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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작은 알약

약국에서 받은 봉투는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앞으로의 생활이 바뀔 만큼 큰 소식을 듣고 왔는데 손에 든 것은 얇은 봉투 하나였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11-06 · 책으로 읽기

약국에서 받은 봉투는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앞으로의 생활이 바뀔 만큼 큰 소식을 듣고 왔는데 손에 든 것은 얇은 봉투 하나였습니다. 저는 적어도 좀 더 거대한 물건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약사는 복용 방법과 주의할 점을 설명했습니다. 저는 처방된 시간과 방법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어디에 물어봐야 하는지도 적었습니다. 약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지금은 제대로 먹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처음 약을 먹는 날에는 물컵을 들고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약을 삼키는 순간 공식적으로 아픈 사람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어제도 같은 몸이었는데 어제는 그냥 저였고, 오늘은 약을 먹는 저였습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안 먹고 뭐 해?”

“생각.”

“약이 기다리겠다.”

저는 물을 마셨습니다. 알약은 금방 넘어갔습니다. 제 자존심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다음 진료에서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운동하고 식사 잘하면 약은 안 먹어도 되죠?”

의사는 제 상태와 경과를 보며 치료를 조절한다고 했습니다. 약을 끊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특히 췌장 기능과 관련된 당뇨 가능성도 함께 살피고 있으니, 생활 습관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조금 실망했습니다. 건강을 되찾으면 약 봉투를 찢는 장면까지 혼자 상상해 뒀기 때문입니다. 영화라면 그때 음악이 나왔을 것입니다.

의사는 필요한 약을 쓰는 것을 실패로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도구를 쓰는 건 무능해서가 아니라고, 사람 힘으로 다 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제 몸에 약이라는 도구가 들어오자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집에 와서 달력에 복용 확인 표시를 했습니다. 첫날은 동그라미 하나였습니다. 별것 아닌 표시인데 하루를 제대로 마쳤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며칠 뒤에는 약을 먹었는지 헷갈렸습니다. 기억을 믿고 마음대로 더 먹지 않고, 배운 안내와 약국 문의로 확인했습니다. 작은 약통을 준비하고 기록 방식을 바꿨습니다. 성실함도 좋지만 덜 헷갈리게 만드는 쪽이 오래갔습니다.

딸은 식탁의 약통을 보고 물었습니다.

“아빠도 할머니처럼 약 먹어?”

저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제 할아버지야?”

약보다 강한 문장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딸은 알겠다고 하고 자기 요구르트를 마셨습니다. 제 정체성 문제는 아이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저는 약통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안경처럼, 필요하면 쓰는 물건으로 두기로 했습니다.

몸을 돌보는 일이 제 체면을 해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약 하나를 삼키며 천천히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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