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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

휴전 협정

저는 어느 주말, 처음 만들었던 췌장 정상화 작전표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11-06 · 책으로 읽기

저는 어느 주말, 처음 만들었던 췌장 정상화 작전표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매일 두 시간 운동. 야식 완전 정복. 생활 습관 전면 개편. 글자만 보면 국가 규모의 사업이었습니다. 그 아래 실제로 체크한 칸은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 종이를 숨겼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식탁 위에 펼쳤습니다.

아내가 보더니 웃었습니다.

“이거 아직 있어?”

“실패한 작전도 보관해야 다음에 안 하지.”

저는 꽤 성숙한 말을 했습니다. 아내는 그럼 안 쓰는 운동 기구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성숙함에는 대개 예상하지 못한 후속 업무가 붙었습니다.

우리는 새 종이를 꺼냈습니다. 제목은 휴전 협정이었습니다. 췌장염과 당뇨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몸을 적으로 정해 매일 몰아붙이는 일을 조금 줄여 보자는 뜻이었습니다.

첫째,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기.

둘째, 처방과 진료를 제 기분으로 바꾸지 않기.

셋째, 운동과 식사는 지금 몸 상태에 맞춰 조정하기.

넷째,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되 전부 떠넘기지 않기.

다섯째, 수치가 기대와 다르다고 하루 전체를 실패로 부르지 않기.

여섯째, 배를 줄이겠다고 팔다리까지 더 약하게 만들지 않기.

저는 허리둘레와 근력, 소화와 영양을 함께 보자는 설명을 제 말로 옮겨 적었습니다. 복부 지방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제 평가 결과를 모든 만성 췌장염 환자의 과제로 바꾸지 않겠다는 뜻도 넣었습니다.

마지막 항목은 딸이 추가했습니다.

‘산책할 때 고양이 구경 시간.’

저는 그 문장을 읽고 정식으로 넣었습니다. 의학적인 처방은 아니었지만 다음 날도 나가고 싶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됐습니다.

경수 선배에게 새 계획을 보냈습니다. 선배는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줄을 더 보내 왔습니다.

〈치료 바뀌면 협정도 고쳐. 평생 같은 몸은 아니니까.〉

저는 아래쪽에 빈칸을 남겼습니다. 예전에는 빈칸이 있으면 덜 준비한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나중에 더 알게 될 자리가 있어도 괜찮았습니다.

그날 우리는 저녁을 먹고 잠깐 걸었습니다. 걷다가 제가 먼저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피곤했습니다. 아내는 알겠다고 했고 딸은 마지막 고양이만 보자고 했습니다. 협정 첫날부터 세부 조정이 필요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습니다. 아내가 차를 마셨고 딸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는 제 배를 내려다봤습니다. 여전히 췌장이 어디에 있는지 손으로 정확히 짚을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안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예전처럼 잊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작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됐지?”

아내가 물었습니다.

“누구한테 물어봐?”

“췌장.”

“대답은?”

“아직.”

아내가 웃었습니다. 저도 웃었습니다. 대답이 없다고 꼭 불길한 뜻은 아니었습니다. 몸 안에서는 조용히 하고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날 작전표를 냉장고 옆에서 떼고 새 협정을 붙였습니다. 자리가 조금 남아 딸의 그림도 같이 붙였습니다.

냉장고 문이 전쟁 상황판보다 가족 게시판에 가까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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