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혈당 일기
저는 숫자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숫자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청구서의 숫자에는 약했지만 그건 돈이 부족해서였습니다. 업무 자료의 숫자는 확인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제 혈당 숫자는 보고 나면 마음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측정 방법과 시점은 교육받은 대로 정했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 때나 재면 걱정도 하루 종일 새로 생길 것 같았습니다. 목표와 대응 방법도 제 치료 계획에 맞춰 확인했습니다.
처음 기록에는 숫자만 있었습니다. 며칠 뒤부터는 그 옆에 변명이 붙었습니다.
‘어제 회의가 길었음.’
‘잠을 적게 잠.’
‘정말 조금 먹었음.’
마지막 문장은 혈당 기록이라기보다 선처를 구하는 문장이었습니다.
저는 기대보다 높은 숫자가 나오면 괜히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어제 열심히 걸었는데 왜 오늘 이러는지 억울했습니다. 몸이 제 노력을 몰라주는 것 같았습니다.
진료실에서 기록을 보여 주자 의료진은 흐름을 봤습니다. 한 숫자로 제가 잘했고 못했고를 판정하지 않았습니다. 측정 조건과 식사, 활동, 약, 몸 상태를 함께 물었습니다. 필요한 치료 조정이 있는지도 봤습니다.
저는 묻고 싶었던 말을 했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좀 좋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의사는 제 노력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노력의 양만으로 결과가 정해진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몸에는 제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잠깐 조용해졌습니다. 관리하라는 말을 들은 뒤 모든 결과가 제 책임이 된 줄 알았습니다. 약이 더 필요해지면 제가 덜 성실했던 탓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저를 자꾸 검사관으로 만들었습니다.
집에 와서 기록의 문구를 고쳤습니다. ‘실패’라고 써 둔 날의 글자를 지웠습니다. 대신 그날 있었던 일을 적었습니다. 늦은 회의, 잠 부족, 평소와 다른 식사. 반성문이 아니라 다음 상담에 쓸 자료로 만들었습니다.
딸이 달력을 보고 물었습니다.
“아빠는 왜 매일 시험 봐?”
저는 웃지 못했습니다. 아이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시험 아니야. 몸이 어떤지 보는 거야.”
말하고 나서 저도 그 설명을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좋은 수치가 나온 날에는 기뻤습니다. 기대와 다른 날에는 여전히 속상했습니다. 마음이 바로 고쳐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 숫자를 핑계로 약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식사를 벌처럼 줄이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체중 기록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숫자가 내려가면 이유를 묻기 전에 기뻤습니다. 의료진은 소화 상태와 식사량, 근력, 허리둘레를 함께 보자고 했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체중이 줄거나 먹은 것이 잘 소화되지 않는 변화는 감량 성공으로 넘기지 말고 알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기록장 앞에 작은 문장 두 개를 붙였습니다. 하나는 ‘체중 감소가 전부 같은 감소는 아님’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 아래에 놓았습니다.
‘성적표가 아니라 연락장.’
저는 오늘도 췌장에게서 온 글씨가 어려운 연락장을 읽고 있습니다. 모르는 부분은 다음 진료 때 물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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