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냉장고 회담
전쟁의 첫 번째 상대는 냉장고였습니다.
전쟁의 첫 번째 상대는 냉장고였습니다.
췌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냉장고는 거실에서도 보였습니다. 손잡이만 당기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상대라서 싸우기 편했습니다.
저는 문을 열고 안을 살폈습니다. 남은 피자 두 조각, 언제 샀는지 모를 소스, 반쯤 먹은 케이크가 있었습니다. 저마다 사연이 있었습니다. 특히 피자는 아이가 남긴 것이므로 제가 처리해야 한다는 오래된 가정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 규칙을 만든 사람도 저였습니다.
아내가 옆에 섰습니다.
“이걸 다 버리게?”
저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제 식단 관리해야지.”
“다른 사람도 먹잖아.”
집에는 환자가 한 명 생겼지만 식구가 한 명만 남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잠시 잊었습니다.
우리는 식사 상담에서 받은 내용을 꺼냈습니다. 제 상태에 맞는 식사량과 구성, 지방을 조절하는 방식, 혈당 관리와 영양을 함께 보는 이유가 적혀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금지 음식 목록처럼 모든 것을 빨간색으로 칠한 종이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탄수화물을 몽땅 없애야 하느냐고 물어봤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상담자는 제가 실제로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부터 확인했습니다. 식사량을 무조건 줄여 영양이 부족해지는 것도 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제한은 개인 상태와 소화 기능에 맞춰 정해야 했습니다.
냉장고 안에서 모든 음식을 유죄로 만들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제 야간 과식이 자주 시작되는 자리를 바꿨습니다. 식사 준비에 쓰는 재료를 손에 잘 닿는 곳에 두고, 남은 음식에는 날짜를 적었습니다.
문제는 음식의 위치보다 제 논리였습니다.
‘버리면 아깝다.’
‘오늘까지만 먹는다.’
‘이건 간식이 아니라 늦은 저녁이다.’
저는 야식을 부르는 이름을 매우 다양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바꿔도 먹은 양은 같다는 사실만 자주 잊었습니다.
음료도 살폈습니다. 캔커피와 달콤한 음료는 제 기억 속에서 음식이 아니라 작업 환경이었습니다. 모니터, 키보드, 커피. 하루에 몇 번 마셨는지 적고 나니 책상 위에 작은 간식 창고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액상과당만 피하면 될 줄 알았다가 전체 당류와 마시는 양을 같이 봐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설탕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무제한 이용권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식사 계획에 맞춰 자주 마시던 단 음료를 무가당 음료와 물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밤 열한 시, 습관처럼 냉장고 앞에 섰습니다. 배가 고픈 것인지, 입이 심심한 것인지, 일을 끝낸 보상을 찾는 것인지 살폈습니다. 상담 때 이야기한 대로 그날 식사 기록도 봤습니다. 무조건 참는 것이 답인지부터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날은 배보다 마음이 출출했습니다. 저는 문을 닫고 아내 옆에 앉았습니다.
“뭐 먹고 싶어?”
아내가 물었습니다.
“피자.”
“그럼 배고픈 건 맞나 보네.”
우리는 웃었습니다. 저는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까지 숨길 필요는 없었습니다.
야식을 안 먹은 첫날, 냉장고가 특별히 억울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저 문을 너무 자주 열었던 것 같습니다. 냉장고도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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