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장
퇴원 가방
퇴원하는 날 저는 병원 복도를 조금 천천히 걸었습니다.
퇴원하는 날 저는 병원 복도를 조금 천천히 걸었습니다.
처음 입원할 때는 빨리 낫고 나가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막상 나가려니 집에서 제 몸을 어떻게 살펴야 하는지 다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병원에 있으면 누군가 저를 보고 있다는 안심이 있었습니다. 집에서는 제가 먼저 말해야 했습니다.
의료진에게 퇴원 뒤 약과 식사, 활동, 다음 진료를 확인했습니다. 어떤 변화가 생기면 연락하거나 바로 진료받아야 하는지도 다시 들었습니다. 저는 기억한다고 하지 않고 적었습니다. 기억은 제 자신감만큼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도 옆에서 들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내용을 다른 말로 기억할 때가 있어서, 헷갈리는 부분은 그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질문이 길어질까 봐 준비해 온 종이를 먼저 내밀었습니다.
퇴원 가방에는 들어올 때보다 종이가 많았습니다. 안내문과 예약표, 약 설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종이들을 한 봉투에 넣고 겉에 병원이라고 썼습니다. 너무 큰 이름이라 나중에 찾기 어려울 것 같아 날짜를 덧붙였습니다.
수납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불었습니다. 저는 그 바람을 대단한 자유라고 느끼다가 잠깐 추워졌습니다. 환자복에서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고 계절이 저를 특별히 봐주지는 않았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딸이 문을 열었습니다.
“아빠, 이제 안 아파?”
저는 괜찮다고 할 뻔했습니다. 아이를 안심시키고 싶을 때 가장 쉽게 나오는 말이었습니다.
“많이 좋아졌어. 그런데 좀 쉬고 계속 관리해야 해.”
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오늘은 레고 말고 책 읽자.”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아이는 제 상태를 제가 생각한 것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말만 제대로 해 주면 됐습니다.
회사 복귀도 조정했습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되찾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서류와 일정을 확인하고 동료들에게 현재 가능한 범위를 설명했습니다. 제 일을 나눠 맡았던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고맙다고 했습니다.
개발 검토와 운영 연락이 제게만 묶여 있던 부분도 정리했습니다. 제가 몸을 돌보는 시간마다 누군가 긴급히 저를 찾아야 한다면 오래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문서 위치와 담당 범위를 나누니 회사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건강을 챙기는 일이 반드시 일에 덜 책임지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배 과장은 제 책상에 쌓인 서류를 이미 분류해 놓았습니다.
“급한 건 위에. 안 급한 건 아래.”
저는 아래쪽을 가리켰습니다.
“이건 얼마나 안 급해?”
배 과장은 웃었습니다.
“아픈 사람이 회사 오자마자 할 만큼은 아니야.”
저는 서랍을 닫았습니다. 세상이 저 없이 잘 돌아간 것이 조금 섭섭했고 많이 다행이었습니다. 둘 다 사실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산책을 하지 않았습니다. 퇴원했다고 바로 예전 계획표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제 상태와 안내받은 회복 계획에 맞춰 쉬었습니다.
운동화는 현관에 있었습니다. 조금 먼지 쌓인 모습이 저를 나무라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기다리는 신발이었습니다.
저는 가방에서 마지막 양말을 꺼내 세탁기에 넣었습니다. 집에서 하는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그 평범함이 그날은 꽤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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