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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자, 췌장아예약 번호

제2장

예약 번호

대학병원 예약에는 번호가 붙었습니다. 저는 그 번호를 화면에 저장하고, 문자에도 남겨 두고, 혹시 몰라 종이에도 적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11-06 · 한 번에 펼쳐 읽기

대학병원 예약에는 번호가 붙었습니다. 저는 그 번호를 화면에 저장하고, 문자에도 남겨 두고, 혹시 몰라 종이에도 적었습니다. 번호가 세 개 있다고 진료를 세 번 받는 것은 아닌데 마음은 조금 놓였습니다.

그날부터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회사에서는 기다리는 일을 잘했습니다. 결재를 기다리고, 회신을 기다리고, 누군가 회의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에는 그 경력이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예약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운영 장애는 생겼습니다. 밤에 원격으로 접속해 원인을 확인하고 나면 잠이 달아났습니다. 저는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일을 마쳤고, 일이 끝났다는 보상으로 늦은 배달 음식을 찾았습니다. 야근을 한 것은 컴퓨터 앞의 저였는데 야식의 공로는 배가 가져갔습니다.

검색창에 췌장을 넣었습니다. 췌장염, 췌장 기능, 췌장 검사. 몇 번 누르지 않았는데 화면에 무서운 단어들이 줄을 섰습니다.

인터넷은 제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입문자에게도 곧바로 가장 어려운 문제집을 펼쳐 줬습니다.

저는 십 분 만에 여러 병을 의심했습니다. 한 시간 뒤에는 치료 계획까지 걱정했습니다. 아직 진료실 문턱도 넘지 않은 사람이 검색 결과에서는 상당히 멀리 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지금 의사가 뭐라고 했는데?”

“큰 병원 가 보라고.”

“그 뒤에 나오는 얘기는?”

저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봤습니다.

“내가 찾아본 거.”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일단 구분해 놔. 들은 말하고 당신이 무서워진 말.”

저는 메모를 두 칸으로 나눴습니다. 병원에서 들은 것. 아직 확인하지 않은 것. 두 번째 칸이 훨씬 길었습니다. 제 불안은 의학 지식보다 성실했습니다.

예약일 아침에는 서류 봉투를 들고 일찍 출발했습니다. 병원은 생각보다 컸고 주차장은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저는 진료보다 먼저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거대한 건물 앞에서 인간이 겸손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접수하고 번호를 받았습니다. 제 앞에는 저마다 봉투와 물병과 걱정을 든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 한 사람이 됐습니다.

옆자리 남자는 휴대전화로 회사와 통화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이라고. 끝나면 연락한다니까.”

그 목소리가 익숙했습니다. 회사에 있는 저도 비슷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몸이 아픈 날에도 다른 사람에게는 여전히 업무 담당자였습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는 제가 가져온 검사 결과부터 봤습니다. 최근 증상, 예전의 복통, 먹는 약, 술, 가족력 같은 것들을 물었습니다.

저는 별 증상이 없었다고 했다가 말을 고쳤습니다. 식사 후 윗배가 불편했던 날이 몇 번 있었습니다. 등 쪽이 뻐근한 날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의자 탓, 야근 탓, 나이 탓을 했습니다. 제 몸의 모든 문제에는 회사가 편리한 용의자였습니다.

의사는 그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추가 혈액검사와 영상검사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지금 당장 응급 치료가 필요한 모습인지도 확인했습니다.

저는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습니다.

“많이 안 좋은 건가요?”

의사는 지금 아는 것과 더 확인해야 할 것을 나눠 말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검색창에서 혼자 달리던 발을 잠깐 멈췄습니다.

병원 밖으로 나오니 예약 문자가 하나 더 와 있었습니다.

결론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다음 순서가 생겼습니다. 그날은 그것으로 버텨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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