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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자, 췌장아선전포고

제7장

선전포고

저는 원래 계획을 세울 때 가장 건강합니다.

마지막 수정 2026-11-06 · 한 번에 펼쳐 읽기

저는 원래 계획을 세울 때 가장 건강합니다.

계획표 속의 저는 매일 일찍 일어납니다. 아침을 차려 먹고, 운동하고, 일찍 잡니다. 실제의 저는 계획표를 만드느라 늦게 잡니다.

진단을 받은 주말에도 계획표를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췌장 정상화 작전이었습니다. 의사가 정상화라는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붙였습니다. 저는 잘 모르는 일일수록 제목부터 거창하게 붙이는 편입니다.

운동 항목에는 매일 두 시간 걷기라고 썼습니다. 식사 항목에는 밥 절반이라고 썼습니다. 배를 줄이는 일을 몸 전체를 작게 만드는 일로 이해한 계획이었습니다. 아내는 운동 항목을 보더니 물었습니다.

“누가 두 시간 걸으래?”

“내가.”

“의사는?”

“상태 보고 천천히 늘리라고.”

아내는 계획표와 제 얼굴을 번갈아 봤습니다. 둘 중 하나가 진료실에 다녀오지 않은 것 같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다음 상담에서 저는 의욕적으로 두 시간 계획을 말했습니다. 의료진은 제 상태와 현재 활동량부터 확인했습니다. 췌장염의 상태가 안정돼 있는지, 혈당 치료와 함께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도 살폈습니다. 지금 제게 맞는 범위에서 시작하고 무리하게 늘리지 말라는 설명을 다시 들었습니다.

밥 절반이라는 항목도 다시 검토했습니다. 제게 필요한 식사량과 구성을 정해야지, 근육이 부족한 사람이 무턱대고 굶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유산소 활동뿐 아니라 상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근육을 쓰는 활동도 배우기로 했습니다. 제 목표는 체중계의 최저 기록이 아니라 허리와 체력의 변화였습니다.

저는 전쟁을 선포했는데 작전 회의에서 제동이 걸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두 번 누르던 사람이 갑자기 장거리 행군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췌장보다 무릎이 먼저 민원을 넣을 계획이었습니다.

계획표를 고쳤습니다. 의료진과 상의한 활동부터 시작하기.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을 중간중간 끊기. 굶어서 줄이기보다 제게 정해진 식사 계획 지키기. 근육과 영양 상태 함께 살피기. 약과 진료를 멋대로 생략하지 않기.

항목들이 몹시 평범해졌습니다. 저는 조금 서운했습니다. 이런 계획에는 승리의 깃발을 그려 넣기 어려웠습니다.

그날 밤 식탁에 앉아 배를 내려다봤습니다.

“싸우자, 췌장아.”

작게 말했습니다.

아내가 거실에서 돌아봤습니다.

“누구랑 싸워?”

“췌장.”

“당신 편 아니야?”

저는 잠깐 생각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래도 선전포고를 철회하면 기분이 빠질 것 같았습니다.

“일단 구호는 이걸로 가자.”

아내는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대신 운동화는 현관에 꺼내 두라고 했습니다. 구호보다 실천에 가까운 지시였습니다.

저는 달력 첫 칸에 별을 그렸습니다. 오늘은 약을 먹었고, 계획한 식사를 했고, 짧게 걸었습니다. 세상을 뒤집은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제 계획표 속 사람이 실제의 저와 조금 닮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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