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비 오는 운동장
비가 오는 날에는 운동화가 저를 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운동화가 저를 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는 현관 한가운데에서 저를 기다렸는데, 비가 오면 신발장 옆으로 자연스럽게 밀려 있었습니다. 누가 밀었는지는 대체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였습니다.
그날도 창밖을 보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어쩔 수 없겠다.”
아내는 일기예보를 보지 않고 저를 봤습니다.
“뭐가?”
“운동.”
“다른 방법은?”
저는 잠깐 아내에게 비의 장점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대지는 쉬어야 하고 사람도 쉬어야 한다는, 꽤 생태적인 논리를 준비했습니다. 아내는 빨래를 개고 있었습니다. 제 연설을 기다리는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상담 때 이야기해 둔 실내 활동 방법을 꺼냈습니다. 몸 상태가 괜찮은 날 할 수 있는 범위였습니다. 거실 한쪽을 비우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딸이 와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빠 운동.”
평소 의자에 앉아 키보드만 움직이던 사람이 거실에서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아이에게는 새로운 프로그램처럼 보였나 봅니다. 저는 배를 납작하게 만드는 묘기가 아니라, 약해진 몸을 조금씩 쓰는 연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이는 잠깐 보더니 같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삼 분 뒤에는 자기 방식으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원래 하려던 동작을 잊었습니다.
웃다가 호흡이 달라져 잠깐 쉬었습니다. 딸은 쉬는 것까지 따라 했습니다. 제가 물을 마시면 자기도 마셨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이 몸을 돌보면 다른 사람의 저녁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물론 매번 이렇게 훈훈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비 오는 날에는 정말 하기 싫었습니다. 피곤했고 기분도 나빴습니다. 저는 짧게 움직이고 그날 계획을 줄였습니다. 기록에 솔직하게 적었습니다.
‘오늘은 하기 싫었음. 그래도 조금 했음.’
예전의 저는 둘 중 하나만 적었을 것입니다. 성공 아니면 실패. 이제는 중간 칸이 생겼습니다. 중간 칸은 생각보다 많은 날을 받아 줬습니다.
한 번은 정말 쉬었습니다. 제 상태와 치료 계획을 기준으로 쉬어야 할 날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찜찜했습니다. 성실한 환자는 매일 무엇인가 해야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몸 때문에 하는 건데 몸이 힘들다잖아.”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운동 기록을 예쁘게 채우려다가 운동의 이유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일찍 씻고 누웠습니다. 휴대전화에서 다른 사람의 운동 기록을 보지 않았습니다. 제 소파에는 저 한 사람 분량의 몸이 있었습니다. 남의 기록까지 올려놓으면 너무 무거웠습니다.
다음 날 비가 그쳤습니다. 저는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어제 쉰 것을 만회하겠다며 두 배로 걷지는 않았습니다. 돌아올 힘을 남기는 계획으로 나갔습니다.
동네 운동장에는 물웅덩이가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피해 걸었습니다. 운동장의 물웅덩이를 밟지 않았다고 비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일을 그렇게 해도 됐습니다.
COMMENTS · 제17장
비 오는 운동장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읽다가 궁금한 점이나 보탤 내용을 남겨 주세요.